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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무엇보다, 피해자 ‘그 인간’을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고,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한겨레』 5월 27일). 일본군 ‘위안부’ 증언팀에 합류했던 양현아 교수가 증언 기록에 대해 한 말이다. 증언이라는 것은 시대 담론과의 투쟁을 경유하며 형성된다. 증언자의 언어가 공적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해하고 기록하며 공감할 청취자 집단이 존재해야 한다.
그 첫 청취자의 역할을 한 이들이 증언을 기록한 활동가와 지식인들이었다. 과거사의 경우, 피해당사자들이 공론장의 개념에 익숙지 않다는 점, 그들의 경험과 기억이 대체로 ‘글’보다는 ‘말’의 형태로 남아 있다는 점이 교육받은 운동가 집단의 기록을 필요로 했다. 운동가는 증언자에게 말을 걸었고, 증언자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이 과정들은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지난한 노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사랑’이 필요했을까? 운동가들이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당대 운동가들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말이라 생각한다. 80~90년대 대학가에서 운동가의 자아를 표현했던 대표적 비유가 ‘함께 맞는 비’의 비유였다. 연대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 것이라는 말은 너무나 낭만적이었고, 그만큼 많은 이들의 가슴을 휘어잡았다. 그런데 현실은 간단치가 않았다. 모두가 같은 지반 위에 있지도 않았고(대학 출신들은 돌아갈 곳이 있었고), 누군가는 비 맞는 일 이상으로 구체적인 대안을 필요로 했다. 무엇보다 비 맞는 ‘피학의 행위’가 낭만화되는 이유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양현아 교수는 위 문장에 이어 이렇게 덧붙인다. “고백하자면, 증언팀의 연구자들은 증언자들과의 관계를 지속한 경우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증언연구가 끝나자 우리는 각자 살길이 바빠서 할머니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던 것이다.” 당대의 기록들, 사후 인터뷰들을 찾아봐도 사회운동에서 이런 이별이 예외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비 맞는 행위’에 감화되었던 운동가들은 무엇보다 운동에 투신한 자신의 고난을 사랑했다. 이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문제는 그 사랑을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오인할 때 발생한다.
운동하는 나를 사랑한 시대
한국에서는 1980년대가 지식인 사회참여의 분기점을 형성한 시기였다. 80년대는 우선 70년대와의 결별을 통해 나타났다. 70년대까지의 역사인식은 패배주의적 사고가 지배했다. 20세기의 서막을 장식한 것은 피식민지배였고, 광복 후에는 미군정이 시작됐으며, 60~70년대의 20년을 군사독재가 지배했다. 1970년대 문학 역시 민중을 작고 짓밟히는 존재로 그리는 경향이 강했다(조세희의 ‘난쏘공’).
(1985년의 구로동맹파업. 80년대 들어 대학생들의 현장 이전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주요한 결과 중 하나가 연대파업을 이룬 구로동맹파업이었다.)
80년대의 전환은 박정희의 죽음에서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며 나타났다. 민중은 이제 짓밟히는 존재에서 봉기하는 존재(광주항쟁)로 인식 전환에 성공한다. 1983년 평전의 출간과 함께 사람들은 민중이라는 이미지에서 전태일을 발견했다. 이 시기 사회운동의 시대정신을 요약한 구호가 ‘열사정신계승’이었다.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가장 근본적인 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죽음’을 택하는 것이었다. ‘분신’은 죽음을 공적 공간으로 인도했다. 죽음이라는 소멸의 과정들은 놀랍게도 개개의 살덩어리에 불과한 인간들을 세계의 거대한 대의 앞에 데려다놓았다.
세계변혁의 열망만큼 그 열망을 내면화한 자신에 대한 사랑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대의의 세계란 기본적으로 글을 통해 구성된 개념의 세계다. 예컨대, 평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손에 잡히는 것인가 아닌가? 길가의 어느 누구도 자기 이름 앞에 민중이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는다. 동일한 ‘민중’의 주체성이 광주항쟁을 전후로 갑자기 변화된 것은 그 시기를 기점으로 (현실 못지않게) 지식인들의 자의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70년대는 무기력의 시대였다. 그러나 80년대는 달랐다. 이때부터 노동문학이 붐을 일으켰고, 한국사회의 체제전환이 당면한 것처럼 사회과학 논쟁이 전면화됐다. 무대가 열렸고, 공론장의 주체가 바뀌었다.
이들이 최근 계속 회자되는 386의 존재다. 60년대 초반생의 대학진학율은 절반 이하였다고 하니, 이들은 60년대생 중에서도 엘리트의 지위를 갖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숫자 ‘3’이 가리키는 것은 이 개념이 이들이 30대가 된 9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10년이 지나 헌정 사상 첫 정권교체가 일어났고, 참여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화두가 등장해 386을 체제 안으로 흡수했다.
엘리트 동맹의 환멸 이후
386이란 민주화 이후 정권의 하위파트너로 제도 진입에 성공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것은 특정 연령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특정 세력에 대한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 정권 차원에서 시민사회로부터 통치 파트너를 끌어오겠다는 구상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이후 ‘참여정부’와 함께 계승된 참여민주주의의 화두였다. 핵심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 이상 큰 정부를 소환할 수는 없다. 작은 정부를 유지하되, 시민사회의 힘을 빌려 관료와 권력기관들을 개혁해야 한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일부 시민단체들이 먼저 움직였다. 교수와 주류 대학 출신의 지식인들이 주축이 되어 정권의 하위파트너로 합류하며, 사실상 87년 체제의 엘리트 동맹이 시작되었다.
(촛불시위의 역사적 변별점은 시위의 인구학적 변동이 일어났다는 점에 있다.)
이 엘리트 동맹의 반대편에서 민주당 정권 10년의 몰락과 함께 퍼져나간 것은 시민사회의 환멸이었다. 이명박은 역대 최저의 득표량으로, 가장 압도적인 대통령 당선자가 된다. 그리고 그 환멸과 함께 부상한 것이 촛불이라는 새로운 대중시위였다. 촛불에 누가 참여했고, 어떤 화두가 수반되었을까? 첫째, 유모차 부대, ‘배운녀자’ 신드롬 등이 2008년 이후 부상했다. 청소년들의 참여도도 높았는데, 이는 정치에서 주변화되던 이들이 촛불과 함께 공론장의 중심으로 올라왔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깃발 논쟁이 반복되었다. 백골단이 사라진 자리에 경찰 차벽이 들어섰고, 격렬한 몸싸움이 약해지면서 ‘문화제’가 집회의 범례적인 패턴이 되었다. 요컨대, 전선의 앞, 즉 전위라는 개념이 모호해졌다. 깃발은 이전까지 전선의 앞에서 그 전선 자체를 대변한다고 간주되었다. 2016년에 오면 깃발 논쟁은 사라지고, 모두가 자기만의 깃발을 가져오며 이색깃발의 향연을 열기 시작했다.
모두가 각자의 이름을 갖는 시대, 누구도 촛불을 대표하지 않으며, 모두가 여러 촛불의 작은 마디가 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 사랑의 방식이 바뀌었다. 아무도 누군가를 사랑했다고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지 않는다. 서지현의 사례를 보자. 사람들이 전태일에게 관심을 기울인 부분은 그의 일대기였다. 그 일대기에서 어떤 모델이 축출되었다. 그러나 서지현에게서 사람들이 읽는 것은 용기이지 모델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와 자신이 닮았다고 하지(‘미투’), 그를 계승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피해당사자’라 불리던 이들의 주체성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세월호 유가족은 유가족 운동에서 최초로 시민단체와 분리된 자신들만의 대변인을 만들었다. 안희정 성폭력 재판 후 피해자 김지은이 쓴 글을 그의 대리인이 낭독했는데, 쓰는 자와 말하는 자가 바뀐 이 장면은 사회운동사의 한 변화를 응축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최근에는 김지은의 책이 출간되었다). 이제 아무도 이들의 언어에서 보편적 가치가 사라졌다고 하지 않는다. 운동과 함께 운동의 감수성과 자의식이 변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이들이 아니라, 한때 민중의 호민관을 자임하던 이들이다. 나를 오인하던 시대, 내 행위의 고난을 사랑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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