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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7.28
    [작은 책 8월호] ‘탈진실’과 ‘인국공’ 사태

‘탈진실’과 ‘인국공’ 사태


‘탈진실’이란, 진실이라 믿겨지던 것들의 공적 시효가 만료된 시대를 말한다. 최근 인천공항 정규직화 사태는 이 진실의 시효만료에 대해 다시 생각케 한다.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에 정보의 좌표를 찍어준 것은 가짜뉴스들이었다. 알바를 하다가 정규직으로 로또취업되었다, 연봉 5천을 보장받았다 등 출처도 불분명한 뉴스들이 삽시간에 퍼져나가며 화가 난 취업준비자들을 삽시간에 끌어모았다. 논란 며칠 만에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이 20만을 넘겼다. 나는 이들의 목소리가 상당 부분 과잉대표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의 6월 26일자 여론조사에서 정규직화 ‘찬성’은 약 40%, ‘보류’는 약 45%였다.

여기서부터 다시 세부적인 정보에 관심이 갔다. 혹자들은 정규직화를 로또취업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심으로 로또취업을 욕망하는 속물들이라고 비난했다. 갑자기 이들이 지목하는 그들이 누구인가 궁금해졌다. 여론조사 결과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20대의 약 56%가 정규직 전환 보류의 입장을 택했다(찬성은 21%).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 보류 비율이 가장 낮은 연령대는 놀랍게도 20대와 함께 묶여 ‘밀레니얼’로 불리는 30대였다(39%). 30대는 한국사회에서 공정성 담론을 처음 주도한 연령대다. ‘공정성’이라는 단어에 여러 복잡한 감정과 이해관계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명료한 개념이기보다 어떤 이미지의 복합체임을 짐작케 한다.

공정성이 공론장의 핵심 화두로 부상한 것은 2010년이다. 당시 대통령 이명박이 공정사회 건설을 집권 하반기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마이클 샌델의 철학 강의록 <정의란 무엇인가>를 언급했다. 책은 출간 7개월여 만에 100만부를 판매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듬해인 2011년 안철수가 반칙 없는 공정세상을 만들겠다는 훼이크(?)를 보이며 2030들을 잠깐 사로잡았다. 안철수에 반응한 2030은 경쟁의 속물적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당시 여론조사를 분석한 논문(고원의 <안철수 중도정치의 효과성에 관한 연구>)을 보면, 이 2030은 적어도 현 집권당인 민주당 지지층보다는 진보적인 자의식을 가진 이들로 파악되었다.

(리얼미터의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여론조사)

공정성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2010년 이후 청년층을 사로잡는 프레임이 되었다. 단어의 모호함만큼이나 공정성은 여러 정치적 방향으로 연결될 잠재성을 수반한다. 누가 어떤 방향으로 첫 스위치를 켰느냐가 중요하다. 세 가지에 집중하고 싶다. 하나는 ‘인국공’ 사건의 정보유통이 출처 불분명의 가짜뉴스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것, 그 와중에 정부도 기업도 정규직 전환의 로드맵을 제공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책임을 방기했다는 점이다. 가짜뉴스는 온라인을 타고 엄청난 폭발력을 뿜어내며 한국사회가 통째로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것 같은 기류를 만들어냈다. 가짜뉴스가 양산되는 데 있어 필요한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넘쳐나는 정보량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정보들의 방향을 잡아줄 정치적 나침반의 부재다. 정규직 전환의 프로젝트에서 ‘공적 책임 주체’(정부)가 사라졌다.

두 번째는 여론조사 답변 항목에 담긴 ‘보류’라는 단어의 모호성이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흥미롭게도 ‘찬성’의 반대편에 ‘반대’가 아니라 ‘보류’를 배치했다. 이 단어에 담긴 복잡한 의미망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정규직 전환 자체를 반대하는 경향(모두가 시험 보고 합격해야 한다는 주장), 정규직 전환의 로드맵이 불명확하다는 것에 대한 의구심, 정규직 전환을 위한 민주적 숙의의 과정이 부재하다는 데에서 오는 반발감 등이 이 작은 단어 하나에 모두 포괄될 수 있다. 그 보류의 어느 정도가 이후 찬성으로, 혹은 완고한 반대로 향할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어떤 것이 불만인지, 누가 어떤 부분에 방점을 두는지 한국의 공론장이 아직 그 디테일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한국사회의 지적 기류 변동에 주목하게 된다. 2010년 이후 경쟁을 선동하는 ‘생존주의’의 지적 기류는 상당 부분 약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2010년대의 출판계 화두를 정리한 <2010~2019 한국 출판계 키워드>라는 책에서는 2010년대 초의 핵심 화두 중 하나로 자기계발서의 몰락을 들고 있다. 사회학 연구들에서도 경쟁 중심의 생존주의가 2030의 마음을 예전처럼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들이 제시되고 있다. 경쟁의 승리가 아니라 자기만의 삶을 잃지 않으려 하는 ‘소박함의 열정’(박주현), 경쟁의 고난 감수가 아니라 현재를 긍정할 수 있는 상태로서의 생존(김가연)이 강조되었고, 이 때문에 퇴사를 통한 미니멀 라이프의 추구 등이 90년대부터 2000년대 말까지의 자기계발 시대를 대체하며 등장하고 있다. 나는 현행 30대들의 정규직 전환 찬성율이 높은 것은 이러한 경쟁주의로부터의 분리라는 변화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2008년과 2016년의 촛불, 2015년을 전후로 한 뉴미디어 기반의 새로운 사회운동 흐름 역시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진실 이후의 진실’을 찾아가야 할 시대

아무튼, 20대의 과반이 정규직 전환 보류 입장을 피력했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것을 단순한 가짜뉴스의 효과로만 환원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가짜뉴스를 넘어 ‘탈진실’(post-truth)이라는 시대현상에 주목하고 싶다. 이 단어는 2016년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올해의 단어’로 기록되었다. 

2016년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해였다. 가짜뉴스 선동가의 충격적인 당선 앞에 주목받은 존재가 ‘앵그리 화이트’(화가 난 백인)였다. 트럼프에 투표한 이들 중 절반이 트럼프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상대 후보 힐러리 클린턴에 분노해서 투표했다고 밝혔다.

사실, 가짜뉴스에 선동되어 트럼프에 ‘매료된’ 사람은 유권자의 그리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 않았다. 트럼프를 택한 기존 민주당 지지성향의 러스트벨트 백인노동계급 다수는 트럼프와 정책적으로 충돌하는 점이 많은 이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트럼프를 당선시켰을까? 문제는 그 반대편, 즉 ‘팩트’들이 앵그리 화이트를 비롯해 청년 및 유색인종들을 감화시킬 정치적 언어를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힐러리에 등을 돌리며 투표장으로 가지 않은 민주당 지지층이 샌더스를 지지했던 ‘밀레니얼’ 세대와 오마바를 지지했던 ‘유색인종’ 집단들이었다는 것이 출구조사에서 밝혀졌다. 비호감 인물 간 대결로 굳어진 대선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킨 것은 진실처럼 보인 가짜뉴스의 힘보다는, 무엇도 진실되게 보이지 않는 기성 정치인(힐러리)의 무기력이었다는 해석이 제기되는 맥락이다. 트럼프의 가짜뉴스는 힐러리의 정치적 호소력이 무너지는 배경하에서 정치적으로 과잉대표되었다.

탈진실이라는 시대 현상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영어 단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post-truth는 ‘탈진실’이 아니라 ‘진실 이후’를 뜻한다. ‘post-truth의 시대’란, 가짜뉴스에 사람들이 쇠뇌당한 시대가 아니라(공화당 지지층 다수도 트럼프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진실’이라고 간주되던 것들이 힘을 잃으며 많은 이들을 공론장으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시대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어리석은 대중의 시대가 아니라, 무능한 정치세력의 시대라고도 볼 수 있다.

인국공의 사례로 돌아와 보자. 정규직이 희소해진 시대에 정규직 전환은 사실상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로드맵을 필요로 한다. 이 로드맵 없이 ‘평등’의 이념을 공정의 수사학에 대립시키는 것은 아무런 호응도 얻을 수 없다. 이 전환에 연루된 넓은 의미의 이해당사자들의 불만을 속물적 이기주의로 포장할 때 을들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가짜뉴스가 이 로드맵의 정치적 나침반이 부재한 환경에서 싹텄다는 점을 감안하면, 필요한 것이 단순 팩트체크가 아님도 알 수 있다. 왜 30대는 20대와 달랐을까. ‘보류’ 의견에는 어떤 세부의견들이 포함되었을까. 이 디테일을 읽는 데서부터 논의가 재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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