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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04
    [작은 책 10월호] 미국프로농구선수들의 Black Lives Matter

미국프로농구선수들의 Black Lives Matter


내 일상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는 미국의 남성프로농구 경기를 보는 일이다. 코로나19로 3월경 중단되었던 리그가 7월에 재개하면서 몇 가지 이슈를 불러왔다. 프로농구선수들 중에는 흑인들이 많다. 3월경 경찰에 의한 흑인 총격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마약사건으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이 잘못된 집으로 들어가 마약과 무관한 비무장 흑인 여성 브레오나 테일러를 총격 살해한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5월에 다시 벌어졌다. 경찰이 흑인남성을 체포하던 과정에서 용의자를 넘어뜨려 목을 무릎으로 오래 눌러 사망케 한 사건이었다.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애도하며 거리로 수많은 미국인들이 나왔다. Black Lives Matter. 흑인들의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문구는 2010년대 이후 마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인종차별 이슈를 담고 있다.

미국농구선수들이 반응했다. 거리로 나가 시위대에 합류했고,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리그의 재개논의가 시작되자 (스포츠 중계로) 인종차별 이슈가 분산될 수 있다며 이슈의 지속성을 유지케 할 방침들을 당국에 요구했다. 7월에 리그가 재개되며 농구코트의 한복판에 Black Lives Matter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선수들의 이름이 새겨지던 유니폼 등 쪽에도 이름 대신 인종차별 해결을 요구하는 다양한 문구들이 새겨졌다. ‘평등’(equality), ‘지금 당장 정의를’(justice now), ‘교육개혁’(education reform). 3월 피격사망자 브레오나 테일러를 추모하는 문구 ‘그녀의 이름을 말하자’(say her name)는 테일러를 익명의 피살자 1인이 아니라 독립된 인격을 갖는 존재로 기억하고 추모하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던 수많은 차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차별이 공권력에 의해 ‘공적’으로 확인된다는 것이 내 삶에 어떻게 다가올지를 생각한다. 7월에 리그는 재개되었고, 선수들은 경기 시작과 함께 무릎을 끓으며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선수들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인터뷰를 했고, 희생자를 애도했다. 그렇게 한 달여의 리그 경기가 진행되던 중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당사자와 관람객

현지 시간 8월 23일, 제임스 블레이크라는 흑인남성이 경찰에 의해 피격을 당했다. 집 앞 정원에서 아이들과 생일파티를 하던 블레이크에게 신고가 접수되었고, 블레이크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다가왔다. 다소간의 실랑이가 있었고, 블레이크는 경찰들의 말에 순종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동차로 향했다. 경찰 1인이 그의 뒤를 따랐고(근처에 경찰 여럿이 있었다), 아마도 ‘거기 멈춰’라고 말했을 것으로 보인다. 블레이크는 차문을 열었고, 경찰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블레이크에게 7발의 총격을 가했다. 블레이크는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법무부는 이튿날 차 바닥에 칼이 떨어져 있었다고 발표했다.

사건이 벌어진 위스콘신 주는 준-내전 상태가 되었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불과 석달 전이었기에 절망감이 도시를 덮었다. 블레이크가 칼을 쥐려 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틀 후 시위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백인 자경단이 총을 메고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다. 17세의 백인인종차별단체 회원이 총을 메고 거리를 누비는 장면이 SNS에 포착되었지만, 경찰은 그에게 총을 겨누지 않았다. 

(위스콘신 Black Lives Matter 시위 중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총격전)

비무장한 흑인과 무장한 백인에 대한 이 차별적 대우는 미국사회를 흔들었다. 후자의 총격으로 시위대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먼저 위스콘신 주의 농구팀 밀워키 벅스의 선수단이 당일 경기 보이콧을 선언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코로나19의 안전문제로 올랜도에 합숙하며 경기를 하던 16개 팀이 모두 보이콧에 동참했다. 선수들은 이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여 회의를 열었다. 절망감이 코트를 덮었고, 농구 중계방송 패널 중 한 명은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방송 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5월의 뜨거웠던 인종차별 반대시위 이후 언론의 외면을 받던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제2 흐름을 탔다. 보이콧은 분노의 표현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공론장의 화두를 집중시키며 효과를 발휘했다. 현지 농구팀 LA 클리퍼스의 팬 트위터 계정이 보이콧 이튿날 이런 질문을 올렸다. “팬 여러분 경기 보이콧 상황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나요?” 관찰 당시 30여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놀라웠던 것은 단 하나의 댓글만 빼고 모두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지의 전반적 여론 역시 선수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바다 너머의 한국과는 너무 달랐다. ‘갑자기 파업을 하다니 돈 내고 보는 팬들을 우습게 아나?’, ‘농구 말고 흑인인권운동가로 전업해라’ 등의 국내 여론은 인종차별을 자기 문제로 직면해 보지 못한 이들의 오만한 발언일 것이다. 딛고 있는 위치가 그 사람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팬으로서의 권리를 말하는 이들과 선수들의 결정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같은 사태를 보면서 완전히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파업권이 외면받고 있다는 점, 연예인들과 운동선수들은 공적 발언의 회피를 강요당한다는 점을 느낌을 받게 된다.


혐오와 분노

나 역시 너무 놀랐고 동시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선수들의 절망이 이리 큰 줄 몰라서 놀라웠고, 이 절망감에 그들이 직접 행동으로 반응하고 함께 논의하며 리그를 멈춰 세울 수 있었다는 점에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미국프로농구 사무국과 구단주들 역시 선수들을 지지하며 인종차별 반대를 위한 리그 전체 차원의 대책을 모의했다.

혐오감과 분노에 대해 생각한다. 혐오감은 일반적으로 약자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해된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감을 오염에 대한 거부감으로 정의했다. 오염은 보통 약자로부터 강자에게로 향한다. 약자의 이미지들이 내 삶과 내 공동체에 들어와 나를 오염시키고 위협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유태인과 여성들은 오염성이 강한 액체적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흑인들은 마약과 범죄의 이미지로,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로 소환되었다. 이런 점에서 혐오는 배제와 숙청의 원리를 안고 있고, 기본적으로 경계의 문제를 항상 환기시킨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반대로, 분노는 오염이 아니라 부당함에 대한 반응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진입의 요구에 잇닿아 있다. 부당함을 당했기 때문에, 그것을 바꿔야 하고, 이 개선의 움직임은 저항하는 이들로 하여금 사회 내부에서 존재를 온전히 승인받겠다는 의지를 표하게 한다. 농구 코트 위에 새겨진 Black Lives Matter는 이 사회적 승인의 요구를 담고 있다.

전직 농구 선수이자 흑인인 찰스 바클리가 최근에 흥미로운 인터뷰를 했다. 그는 ‘유명한 흑인으로 사는 것’이 삶을 피로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백인들과는 달리 흑인 관련 이슈만 터지면, 유명 흑인으로서 언제나 공적 발언을 강요당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너무 강렬했다. 백인들은 (언론과 기업과 공권력이 이미 그들을 대표하기 때문에) 유명인을 통해 자신을 특별히 더 대표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얼마나 편안하고 안전한 삶인가. 선수들이 더 많은 파업의 권리를 사용했으면 한다. 그들이 더 많은 공적 승인의 기회를 얻기를 원한다. 파업이 없었으면 나 역시 인종차별 이슈에 둔감한 채 살았을 것이다. 그들의 분노가 그들뿐 아니라 자신을 닮은 유명인들의 목소리를 갈망하게 되는 더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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