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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연구소입니다. 제 주거공간 내 큰 방을 연구실로 삼고 있습니다. 중단기적인 연구주제는 2008년 이후의 한국사회 공론장의 변화라는 화두입니다. 미디어 연구를 통해 뉴미디어 체제의 공론장과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소는 2008년을 한국사회 시대분기점의 축이 된 해로 간주합니다. 2008년은 한국사회 공론장에 ‘거대한 전환’이 일어난 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2008년과 관련해 떠오르는 화두는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조금 달랐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경제위기와 관련해 분기점이 된 것은 1997년이고, 2008년은 그 연장선에서 이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럽 등지에서 2008년은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등장으로 특징지어지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2008년은 우익적 반동의 시작이라기보다 촛불을 통한 정치 패러다임의 교체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2007년 자칭 CEO대통령이 등장했으나, 임기 첫 해부터 촛불의 저항으로 지지율 폭락을 경험했고, 2010년에는 프레임 전환을 위해 대통령이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정치적 통치를 CEO식 경영으로 온전히 대체할 수 없었고, (공정성이라는 말이 이명박식으로 전용된 사례라 하더라도) 기업가형 생존논리만으로는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8년은 CEO 대통령이 등장한 해임과 동시에 촛불시위가 한국 공론장의 패러다임 전환을 견인한 해였습니다. 촛불시위의 해라고 할 때 크게 두 가지 점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포스트-2008년의 시대정신 1: 안전공간의 추구
하나는 ‘안전’ 문제입니다. 이른바 ‘먹거리 안전’이라는 게 촛불시위와 함께 공론장의 핵심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통해 대외무역의 효율성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국민들은 국민경제의 효율성과 자기 안전의 문제가 충돌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경제 효율성과 안전 문제의 충돌은 통치 정당성의 훼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체제재생산 용어 중 하나로 주목해야 할 것이 안전망(security)이라는 개념입니다. 프랑스 등지를 중심으로 20세기 초 사회보험의 도입과 더불어 사회‘안전망’이라는 것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습니다. 국가가 모든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는 없지만, 안전의 일정한 통계적 표준은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컨대, 교통사고율이 얼마를 넘지 않도록 교통시스템을 정비하고, 사고가 났을 때 보험체계를 통해 개인들에게 닥칠 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기본 패턴입니다. 수많은 보험가입자들의 보험료 납부로 개별 사고의 위험을 분산하여 리스크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게 핵심입니다. 빈곤율을 낮추기 위해 산업시설을 건설하고, 실업률 증가에 맞춰 고용보험의 외연을 확장하기도 합니다. 사회안전망의 구축은 체제재생산의 표준을 구축하는 일이었고, 이를 통해 정부는 국민여론으로부터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안전망 개념의 정신적 시원이 형성된 것이 18세기 중농주의의 정신이었고, 미셸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라는 강의록에 이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정신은 시장의 자율성 모델에 의존하는 데 그쳤고, 이것이 19세기 말 이후의 연대사상과 더불어 사회보험의 도입과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안전의 컨트롤타워로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해지게 됩니다. 20세기 국민국가의 통치 정당성은 사실상 이 안전망의 확립을 통해 확보되는 것이었습니다. 안전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생명의 안전이었고, 19세기에는 ‘빈곤’의 화두로 확장되게 됩니다(19세기 빈곤의 화두 속에 탄생한 소설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입니다). 20세기에 안전은 보다 차별에서부터 난민 수용의 문제까지 보다 포괄적인 사회관계망의 화두로 발전했습니다. 반대로, 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은 집권세력이 안전관리와 경제효율성 간의 상호충돌을 촉발시키며 이 통치정당성을 스스로 흔드는 과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촛불로부터 안전은 시대의 핵심 화두가 된다)
2008년 이후의 안전 이슈를 조금 더 구체화한 것이 ‘안전공간’의 추구입니다. 2010년대 미국의 대학가에서 부상한 핵심 용어 중 하나가 ‘안전공간’(safe spaces)이라는 용어였습니다. 대체로 페미니즘과 소수자 인권 담론에서 제기된 용어로 대학가를 흔드는 강력한 파장을 야기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 페미니즘 담론에서 가장 빈도 높게 등장하는 개념 역시 이 안전공간이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 즉 세이프(safe)가 안전망으로 번역될 수 있는 씨큐리티(security)와는 어감도 의미맥락도 상이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체제 재생산장치로서 안전망을 특징짓는 용어 중 하나가 ‘리스크 관리’입니다. 이는 앞선 교톻사고율 등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 그것은 통계적-확률적 표준치의 유지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리스크의 적절한 번역어는 위험이 아니라 위험률입니다.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교통사교율이 얼마 이상을 상회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이 통치 패러다임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전망은 하나의 통치 패턴으로서, 개개인이 직접 경험하는 현상이 아니라 익명의 통계치와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내가 오늘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할지는 누구도 보장해 줄 수 없지만, 한국사회 전체의 교통사고율은 통제가능합니다. 반면, 안전공간이라는 용어의 안전, 즉 safe는 말 그대로 개개인이 직접 체감하는 위험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강남역 인근에서 익명의 남성에 의해 가해진 여성살해는 통계적으로는 여러 죽음들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 죽음이 한국사회에서 체감되는 방식은 통계치 이상의 강한 충격과 혼란을 수반했습니다. 희생자의 이름은 익명화되었지만, 그 죽음 자체는 결코 익명화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질문은 왜 안전이 ‘사회’의 건설보다는 ‘공간’의 구축이라는 문제와 연관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2008년은 아직 안전의 문제가 공간 구축의 문제로 표면화된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회자된 것은 ‘안전사회’의 건설이었지 ‘안전공간’의 구축은 아니었습니다. 먹거리 문제에서도 배의 침몰에서도 사람들은 동일한 ‘국민’들을 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의역 ‘김군’의 죽음에서, 강남역 여성 살해의 국면에서 모두가 동일한 국민의 자격을 유지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안전공간의 추구가 여성 및 소수자 인권의 문제와 연관되는 이유는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이 공간은 일정한 울타리이기도 하고, 방어막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울타리 역시 여느 사회관계망과 마찬가지로 복합적인 화두, 다면적인 갈등에 연결된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그것은 여성혐오 폭력으로부터 인권을 사수하는 방어막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그 공간 내에 발 디딜 수 있는 이들의 자격을 심사하는 방어벽의 기능도 하곤 했습니다. 전자가 박근혜 탄핵 촛불에서 ‘페미존’의 공간 구축을 낳았다면, 후자의 문제가 폭발한 것이 2020년 초 일부 숙명여대 페미니스트 동아리들의 트랜스젠더 여성 입학 반대 성명 발표입니다.
이러한 안전 감각의 변동, 혹은 새로운 안전감각의 추구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방식에도 일정한 변화를 야기했습니다. 대학가에서 최근 이슈가 되곤 했던 것이 이른바 ‘마스크 시위’입니다. 2016년 이화여대 대학본부 점거투쟁에서 마스크 시위는 상당한 상징성을 수반했습니다. 최근 n번방의 공론화를 주도한 ‘Project Reset’이 누구에 의해 조직되었는지 공론화된 바는 없습니다. 과거의 사회운동 속에서도 많은 익명의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익명을 추구했다기보다는 필명을 추구했다고 보는 게 적절합니다. 박노해라는 이름은 탄압하는 이가 없어 필명의 필요가 없어진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이름입니다. 김지하도 그렇고 이진경도 그렇습니다. 이들의 필명은 사실상 주민등록상의 이름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필명이 정권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이름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그들의 존재 자체를 대체하는 이름, 그들이 직접 자기화하고, 때로는 브랜드화할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스크 시위는 필명이 아니라 익명의 존재방식입니다. 이 익명들은 때로 어떤 집단화된 이름으로 공론장에 등장했다가 사로지곤 했습니다. 2013년 말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릴레이에는 많은 익명들이 참석했습니다. 2016~17년 촛불시위의 이색현상 중 하나는 본인들의 정체성과 무관한 이름을 단 이색깃발들이 등장한 점이었죠. 예컨대, 당시 유명해진 ‘장수풍뎅이연구회’ 깃발의 주인공은 실제 장수풍뎅이와 무관한 이였다고 합니다. 그냥 홀로 촛불 속에 참석하기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자기 공간의 친숙함을 만들기 위해, 본인의 고립성을 벗어나기 위해 만든 깃발들이라 합니다. 이색깃발들은 촛불과 함께 등장했다가 촛불과 함께 사라진 이름들입니다.
(2016년 이화여대의 대학본부 점거투쟁 당시의 마스크 시위)
2018년 혜화역의 불법촬영물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주최한 ‘불편한 용기들’은 익명의 존재들이 어떤 고민들을 통해 결집하고 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마스크 시위는 카메라에 얼굴이 노출될 위험을 막기 위한 방어장치였습니다. 수만 명이 함께한 2018년의 시위들을 끝으로 이 ‘불편한 용기들’이라는 이름도 더 이상 공론장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이 익명의 존재론에 대해서는 더 깊고 디테일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관련해 지난해에 칼럼을 한 편 쓴 바 있습니다(<마스크 시위의 존재론>, 링크). 저의 최근 논문 <안전망에서 안전공간으로: 포스트-2008년의 안전 감각과 진정성의 전환>은 이 문제의식을 확장한 연구물입니다(링크). 이 논문에서 저는 안전감각의 변화 속에 ‘다연결망’ 형태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새로운 ‘원-포인트 실천 공동체’가 탄생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포스트-2008년의 시대정신 2: 정치적 주체성과 공적 서사의 변화
2008년이 던지는 또 하나의 화두는 정치적 주체성의 변동이라는 화두입니다. 2008년 촛불시위의 새로운 화두 중 하나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삼국카페’들, 82Cook, MLBPark 등과 같은 취향 기반의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촛불시위의 주요 참여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이었습니다. 2002년에도 이른바 ‘네티즌’의 촛불 참여가 주목된 바 있고, 이들과 기성 사회운동 세력 간의 깃발논쟁이 촉발된 바가 있기는 합니다(운동단체의 깃발로 촛불을 대표할 수 있냐 등의 논쟁).
그러나 2002년과 2004년의 촛불들은 노무현과 반미의 구호로 수렴된 기존 87년 체제의 진영론과의 연결관계를 일정하게 유지한 바 있습니다. 2002년 당시 촛불 참여자들이 김대중 정권에 매우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는 여론조사가 존재합니다. 기성 정치권력에 대한 염증은 디지털문화와 만나며 거리의 새로운 시위로 폭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그 자신의 독자적인 화두나 주체성을 온전히 가시화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꼈던 많은 이들이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와 만나며 선거당일에 투표장으로 향했습니다. 실제로 촛불의 주축이 된 당시의 20~30대들은 87년 민주화의 수혜자이자 그 문화의 시대정신 속에 자신의 정치적 자아를 형성한 이들입니다.
2008년의 새로움은 87년의 시대정신과 촛불대오 간의 연결관계가 끊겼다는 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2008년 촛불시위의 참여자군을 엄격하게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통계적 연구물들을 보면 20대와 30대가 주력 참여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촛불의 주력 참여군이었던 20대의 당해 총선 투표율은 28%에 불과했습니다(전체 투표율은 46%). 낮은 투표율이 암시하는 바는 높은 정치적 냉소 성향입니다. 여기서부터 선거용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선거 용어 중 한국에서 가장 오염된 단어가 ‘중도층’이라는 단어입니다. 언론들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거나, 양대 정당 중 하나를 지지하지 않으면 그냥 관습적으로 ‘중도층’이라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정치학 연구결과물들을 봐도 이런 호명방식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도층은 정당 지지의사를 갖지 않는 이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치학자들이 주목하는 보다 폭넓은 학문적 개념은 ‘무당층’입니다. 영어로는 independent voters라고 하는데, 단어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정당독립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이 정당독립층이 점차적으로 늘어납니다. 말 그대로 기존 정당들이 자신들의 관점과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죠.
정당독립층(무당층)은 다시 두 부류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정치무관심층이고, 다른 하나는 인지적 독립층입니다. 전자는 말 그대로 탈정치화된 집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치에 대한 냉소의 정서와 연관됩니다. 청년층이 탈정치화되었다라는 주장은 대체로 이 집단들에 한해서 유효합니다. 그러나 독립층 내에서 이 정치무관심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당독립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로 인지적 독립층이 꼽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충분하지만, 현행의 정당질서에서 일체감을 느낄 정치세력을 발견하지 못한 존재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며, 연구들의 일정한 합의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으로 최근에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1) 젊다
2) 진보적인 성향을 갖는다
3) 교육 수준이 높다
4) 여성들이 많다
5) 낮은 정당일체감으로 인해 정치적 효능감이 떨어진다.
정당으로부터 독립되었다는 것은 정당과 자신 간의 일체감이 낮다는 말입니다. 정당독립층의 이 낮은 정당일체감과 2008년 이후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 촛불시위 등으로 나타난 높은 공적 참여도 현상입니다. 2008년 이후 20대 청년층이 공론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 문화적 신드롬 같은 현상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 시작점이 촛불시위였습니다.
왜 촛불시위라는 정치적 행위가 취향 커뮤니티들을 통해 매개되었는가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 자체가 다각도에서 디테일하게 연구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명료해 보이는 점은 있습니다. ‘낮은 정당 일체감’을 새로운 네트워킹 모델에 맞춰 표현하면 ‘높은 취향 일체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인적 관계망, 국가의 사회안전망 등이 개인의 삶으로부터 후퇴하면서 소비문화에 기반한 ‘취향’의 세계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주요 코드로 부상했습니다.
2008년 이후 소강국면을 경과한 뒤 2011년에 다시 한번 신드롬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팟캐스트라는 뉴미디어 체제에서 나꼼수 신드롬이 일었고, 안철수가 ‘새 정치’를 말하며 다시 파장을 일으킵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의 당선 역시 한 분기점이었습니다. 나꼼수 멤버들의 성향이 어떻다는 것, 안철수의 본질이 어떻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아니라 이들을 소비하며 정치적 자아를 찾아간 이들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들에 대한 많은 연구 문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는 위에서 말한 인지적 정당독립층의 성향과 거의 일치합니다. 교육 수준은 높고, 젊으며, 여성 비중이 많고, 진보적 가치를 추구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반응하는 몇 가지 키워드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공정성이었고, 이후 세습과 여성혐오 문제가 부상합니다. 2002년 촛불과의 차이점은 이러한 탈-87년 체제형 화두들의 등장에 있습니다. 안철수 신드롬 당시인 2011~12년도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도 안철수 지지층은 문재인 지지층보다 진보적 가치를 더 추구하고, 젊으며, 여성 비중이 높다는 결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인지적 독립층의 정치적 지향을 ‘중도층’으로 오인하며 몰락한 이가 안철수입니다(고원의 논문 <안철수 ‘중도정치’의 효과성에 관한 연구>). 나꼼수 지지층들의 일부는 나꼼수 멤버들의 여성혐오 태도에 반기를 들었고, 이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은 박원순은 기존 진보정당의 의제들을 자기화하며 민주당 내 비주류 대권 주자로 부상합니다.
이 당시의 20대는 현재 30대입니다. 30대 여성 고학력층은 8~9년이 지난 지금 현 정권의 가장 압도적인 콘크리트 지지층이 되었습니다. 흐름상으로 2010년대 초에 이어 2016년 촛불을 전후로 한 시점이 또 한 번 이들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는 ‘새 정치’라는 말보다 변화에 대한 갈망을 훨씬 구체화합니다. 반대로, 진보정당들은 2008년 이후 기존의 지지층(40대 남성 및 중공업 노동계급)으로부터 멀어졌고, (2017년 대선 이전까지는) 새로운 지지층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합니다.
2008년을 전후로 트위터를 비롯한 SNS 뉴미디어가 한국사회에 빠르게 유입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사용하면 ‘연결’을 추구하는 감각이 부상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이미 ‘취향’이라는 것 자체가 문화적 연결감각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나와 선호하는 음악이 같은 이들, 나와 같은 덕질을 하고 같은 게임을 하는 이들이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결’이라는 말이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사실 아무 곳에나 갖다 붙여도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와 나는 연결되었어, 쌍용차 해고자와 나도 연결되었고... 등등. 이렇게 말하는 순간 이 말이 예전의 ‘연대’라는 말과는 어떻게 다른지 알 수가 없습니다.
SNS 미디어 연구에서 발견되는 공통 사안 중 하나는 인쇄미디어와는 달리, SNS에서의 소통이 구어적 대화의 성향을 강하게 띤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문어는 독백의 형식을 취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이 글을 누가 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누구도 제 독백에 개입해 흐름을 바꾸지 않습니다. 월터 옹이라는 미디어 학자는 문어의 세계에서 독자가 가상화된다고 말합니다. 글이라는 것은 소통의 가상적 공동체를 상상하면서 쓰여진다는 것입니다. 소통이 상상적이기 때문에 저는 글의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 말하기의 태도를 취합니다. 공론장에 들어서는 순간 대서사의 작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강한 입박감을 느낍니다. 일기 모음집의 형태를 취했던 노동자수기의 출판은 한국에서 70년대 말 ~ 80년대 초에 크게 확산됩니다. 이 수기문학들은 저자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외양으로 익명의 독자들을 상상하며 말하는 문학형태였습니다. 이때 노동자들이 쓴 수기들 다수가 취한 서사구조는 비슷했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노동자가 되었고, 노동조합을 알게 되면서 노조활동가로 변화하는 과정”(유경순의 논문 <구로동맹파업과 노동자 자기역사쓰기>). 억압적인 세계의 한복판에서 태어나 투사로 발전해 가는 근대적 자아의 성장서사는 사실상 독백의 문학적(문어적) 세계가 발견해 낸 창조물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포스트잇: 포스트잇은 이어말하기의 한 모델이 되었다)
반대로, SNS의 뉴미디어 체제는 구어의 대화적 형식을 취하곤 합니다. 트위터(twitter)는 영어에서 ‘재잘거림’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재잘거림은 양방향 대화를 통해 가능하고, 기승전결의 구도보다는 지속적인 끊어짐과 상호개입의 상황을 상정합니다. 페이스북(facebook)은 우리말로 ‘얼굴책’이라는 뜻인데, 보통 구어의 생활공간을 우리는 대면공간이라고도 합니다. 이때의 ‘면’(面) 이란 ‘얼굴’을 뜻하는 것이죠. 글을 쓰기는 하지만, 그 글이 하나의 자기완결형 서사를 갖기보다 얼굴을 맞대며 말하듯 개입하고 끊어지는 소통방식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2008년 이후 취향의 연결감각들은 이 재잘거림과 면대면의 구어적 소통방식에 깊게 연동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디지털 구어세계에서 요즘 사회운동적으로 많이 활용되는 것이 해시태그입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비슷한 것이 포스트잇 붙이기입니다. 세월호의 팽목항에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추모의 메시지로 포스트잇 붙이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문어의 세계에서 저자는 한 명이지만, 디지털 구어의 세계에서 각 유저들은 서사의 개별 노드들처럼 메시지와 메시지를 이어붙이며 하나의 서사를 구성합니다. 포스트잇과 ‘안녕들 하십니까’의 대자보 릴레이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연결’과 ‘릴레이’는 비슷한 의미구조를 갖고, 이로부터 변화된 서사의 세계가 발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사회운동의 주요 구호 중 하나가 ‘열사정신 계승’이었습니다. 그 열사의 규범모델이었던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은 평전이라는 가상의 문학적 형식을 통해서였습니다. 근대의 철학자들은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개별의 인간들은 사적으로는 악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사적으로 악한 사람들조차도 공적 관계망에서는 선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하는 [규범을 창출하는] 것이다.’ 칸트가 <영구평화를 위하여>에서 제기한 논제가 대체로 이러합니다. 이 공적으로 선한 자아의 모델은 문어의 세계에서 연출되었습니다. 대학공간에서 운동의 세계에 접근하는 입문적 과정에 항상 평전이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서지현 정신 계승’을 외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서지현 검사를 계승하기보다 그와 연결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차별의 경험 공유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는 방식,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거는 방식의 변화가 녹아 있습니다. 이 새로운 연결방식들, 서사 구축의 변화된 패러다임을 연구하는 것이 2020년 저의 화두입니다.
계획
계획이 중요합니다. 지금 준비 중인 논문은 여름에 완성되겠지만, 출판이 되려면 심사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가을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연구소로서 논문 출간 외에도 몇 가지 활동들을 더 해보고자 합니다.
1) 월례 이슈페이퍼: 시사-사회 문제와 관련해 칼럼 형식의 기고문
2) 논문 업데이트
3) 정기 칼럼 업데이트
블로그 외에 소통은 이메일을 통해서 합니다. 이메일: donghwa19ko@hanmail.net.
[국문초록]
이 연구는 2008년 이후 안전 감각과 진정성의 시대정신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분기점을 2008년으로 가정한다. 2008년의 광우병 논란은 근대적 안전망 체제의 몰락을 폭로한 계기였다. 아울러 그것은 ‘CEO 대통령’으로 대변된 신자유주의의 리스크 감수 원리가 봉착한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이후 2014년에 세월호 참사, 2015년에 메르스 사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구의역 참사가 연이어졌다. 체제로서의 안전망과 개인들의 생존감각으로서의 안전 감각은 이 과정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분열됐다. 안전 감각의 변화는 동시에 진정성의 감각을 변화시켰다. 오늘날 공적 자아의 새로운 표현 형태를 본 연구는 ‘다연결망 원포인트 실천공동체의 추구’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근대 진정성의 도덕적 이상을 대체했다. 본 연구는 2008년 이후의 안전감각과 진정성의 변화를 통해 한국사회가 사회문제의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판단한다.
주제어: 안전망, 안전공간, 리스크 관리, 진정성, 다연결망 원-포인트 실천공동체.
<목차>
1. 들어가며: 포스트-2008년과 안전망의 위기
2. 세월호에서 강남역으로
3. 포스트-2008년의 진정성: 원-포인트 실천공동체와 ‘연결형 자아’
4. 맺으며
1. 들어가며 - 포스트-2008년과 안전망의 위기
본 연구는 한국사회의 안전과 진정성의 시대감각이 2008년 이후 어떤 근본적 전환을 겪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본고의 키워드는 리스크 관리, 안전망, 안전공간, 진정성 등의 개념들이다. 2008년을 시대사적 분기점으로 만드는 것은 ‘안전망’(security)과 ‘안전’ (safety) 감각의 근본적 균열이다. 본고는 안전망과 안전의 개념을 엄격히 구별하기로 한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전자가 현대사회의 체제재생산 메커니즘과 연관된다면, 후자는 전자의 붕괴 국면에서 나타난 시민사회 혹은 개인들의 공동체적 방어감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를 촉발한 것은 ‘먹거리 안전’이라는 새로운 사회이슈였다. 현대사회에서 안전이라는 것은 수세기 간 지속된 사회문제의 화두였다. 예컨대, 1970년 전태일의 죽음은 청계피복 시장에서의 참혹한 노동환경이 그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몸을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장시간 노동의 비인간적 환경, 손가락을 잘라내는 공장기계의 흉물스러움은 산업화 속에 안전이 직면한 위험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960년대 논픽션 르포문학이 이미 도시 이면의 가난한 삶을 묘사했다(천정환 2011, 235). 우리가 근대화라고 부르던 시대의 안전 문제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성장국면 이면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다. 90년대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 사람들은 ‘급속한 근대화 추구의 폐해’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의 안전 문제는 이 근대화의 문제와는 결을 달리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1970~1980년대 지식인들의 자의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대 지식인들이 사회비판의 역사적 소명을 인식하는 데 사용했던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주체화의 실패’라는 것이었다(이남희 2015, 78). 지식인들은 식민지 해방 후에도 미군정의 지배가 이어지자 민족의 해방을 스스로 실현하지 못했다는 자각을 하게 됐고, 이것을 ‘주체화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하나의 권력에서 다른 하나의 권력으로 체제가 이양되었고, 주체는 자주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새로운 권력에게 거세되었다. ‘주체화의 실패’라는 모티프는 당대 문헌들에서 거세의 은유와 같은 것이었고, 많은 경우 장애의 비유로 연결되곤 했다. “사팔뜨기”, “상처로 뒤덮인 유린당한 몸” 등이 한국사회 주체성을 표현하는 이미지로 활용되었다(같은 책, 80).
유사한 모티프가 문학 영역에서도 반복적으로 출현했다. 70년대에 이 장애의 모티프를 활용한 대표적 작품이 조세희의『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다. 80년대에는 박노해가 약간의 변주를 담아 ‘잘린 손가락’에 대해 말했다. 아래는 그의 시「손무덤」(1984)의 일부다.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 중략 …)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 주질 못하였다.
주체화에 실패한 몸이 유린당한 몸이었듯, 시민권을 얻지 못한 노동자의 몸은 손가락이 잘리거나 성장이 멈춘 장애의 몸이었다. 70~80년대의 안전은 기본적으로 거세, 훼손의 모티프와 긴밀히 연결됐다. 누군가는 죽거나 다쳤지만, 그 훼손은 저항을 통해 회복되고, 새로운 주체의 이름하에 통합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됐다. 근대화의 과정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교육적 저변 확대를 동반했고, 이 과정은 안전의 훼손 속에서도 계층이동과 미래의 진보를 도모할 여러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위험은 개별의 몸, 혹은 공동체에 일어나는 훼손이었지만, 동시에 저항을 불러오는 사회변혁과 진보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반면, 2008년의 ‘먹거리 안전’ 이슈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을 수반했다. 그것은 몸 일부에 일어난 훼손이기보다 총체적 절멸에 가까웠다. 먹거리는 특정 공장이나 지역에 한정되어 배포되지 않으며, 시민들의 일상 전반으로 흘러들어가 위험을 확산시킨다. 위험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어느 만큼의 빈도를 갖고 출현하는지도 불확실했다. 공장에는 공장 나름의 산업재해 요소와 범주가 존재한다. 빈민촌에는 빈곤이라는 문제가 시대와 지역별 격차를 두고 일정한 ‘비율’로 존재한다. 현대의 안전망 시스템은 이 범주와 빈도에 대한 확률적 관리를 통해 발전했다. 예컨대, 산업재해율과 빈곤율과 범죄율 등이 존재하고, 노동시간과 건강 간 관계를 연구해 적정의 노동시간 범위를 산출할 수 있다. 교통사고율과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도로를 새롭게 건설할 수도 있다. 그간 먹거리 안전에 있어서도 위생적 차원의 오염과 전염 등이 문제로 인식되었지만, 이는 도시위생 관리와 교육 등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광우병 위험은 그 확산의 범주에서도, 위험측정의 지식 차원에서도 기존 안전망 관리 시스템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다.
현대 통치술의 핵심 개념인 안전망이 확률에 준거한다고 할 때 사고의 근저에 놓인 또 하나의 개념이 바로 ‘리스크’다. 위험(danger)이 보통 인간이 처하게 되는 위협의 사태나 현상을 말한다면, 리스크는 그 사태의 확률적 가능성을 뜻한다. 위험은 인간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라기보다 인간에게 닥치는 것에 가깝다(Beck 2009, 296). 반대로 리스크는 인간의 인식작용을 통해 적극적으로 전유되는 지적 개념이다(ibid.). 요컨대, 리스크는 확률적 측정치로 환산된 위험의 가능성을 말한다. 인간 바깥에서 인간에게 닥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출현하지 않았지만 그 개연성을 인간 인식의 차원에서 포착한 것이 리스크다.
미셸 푸코 이래, 안전망과 리스크 개념은 현대의 통치론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들로 간주되었다. 푸코와 그 계승자들은 안전망 체제의 핵심 원리를 리스크의 분산관리로 이해했고(Ewald 1991, 203; Baker 2007), 그 분산관리의 목적을 리스크의 제거가 아니라 리스크의 균형상태 유지에 있다고 해석했다(Foucault 2011, 24). 로베르 카스텔은 프랑스 사회보험제도 도입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고, 화재, 홍수, 심지어는 질병과 실업과 노화 혹은 죽음으로부터 사람들이 ‘보호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은 대체로 위험요소들이며,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이 위험들은 이러저러한 순간에 나타날 것이며, 그 사건들의 출현은 계측가능하다. 따라서 사회적 삶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일정한 양의 (사회적) 리스크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다.(Castel 2003, 217)
반대로 광우병은 확률의 계측 범위를 넘어섰다. 광우병 발병 원인에 대한 지적 논쟁이 촛불시위 내내 ‘광우병 괴담’론, MBC PD수첩에 대한 정부 탄압 등의 사회적 논란들과 더불어 격렬히 전개되었다. 광우병이 전염병의 확산성을 갖는지 않는지, 한국인의 유전적 요소가 광우병에 취약한지 아닌지, 30개월 미만 소에 광우병 위험물질이 있는지 없는지 등이 모두 총체적인 해석과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김종영 2011).
안전망 체제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의 국민국가적 기반에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사회보험 정책을 고안할 때 지적 토대가 된 것은 사회적 ‘연대’의 상상이었다. 에밀 뒤르켐, 레옹 부르주아 등의 프랑스 지식인들은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사회보험 등의 매개장치를 통해 유사-사회계약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田中拓道 2014, 238~239). 구성원들 서로가 보험의 비용을 분담하고, 의무가입의 형태를 취할 때 보편적 시민권과 안전망이 구축될 수 있다. ‘사회’라는 것은 익명의 개인들이 상호연대책임을 느끼며 형성하는 상상적 공동체 관계로 이해되었다. 19세기 이후 이 상상의 경계는 우리말로 ‘국민’, ‘민족’ 등으로 번역가능한 ‘네이션’(nation) 위에 형성된다.
현대의 안전망 체제에서 국민국가는 국경을 기반으로 해 ‘사회’의 단일공간을 구성했다. 예컨대, 20세기 경제의 핵심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것이 국민국가의 거시경제정책이었다. 정부에 의해 수요와 이윤율이 관리되고, 적극적 세제와 사회보험 도입을 통해 시장에 대한 개입을 확산시키는 형태로 국가의 안전망 체계가 구축되었다(Rose 2008, 90~91). 이때 경제는 곧 ‘국민경제’의 형태를 띠었으며, 20세기 안전망의 리스크 관리는 국내총생산(GDP)과 국민경제의 대외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회통합성 제고를 목표로 하며 전개됐다. 반대로, 80년대 이후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통치철학이 확산되며 상상의 ‘단일 단위’로서 사회의 위기가 도래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기업가형 자아와 잘게 쪼개진 여러 작은 공동체 단위의 모델들이었다(ibid.).
기업가형 자아가 새롭게 추구한 것은 리스크의 단순 분산이나 회피가 아니라, 리스크의 적극적 끌어안기였다. 금융투자의 핵심 모티프 중 하나로 거론된 것이 ‘리스크 감수’(risk-taking)였다. 보다 포괄적인 표현으로 리스크 끌어안기(embracing risk)가 사용되기도 한다. 사회보험의 세계에도 리스크 감수의 새로운 마인드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의무가입 형태의 공적 사회보험들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신과 자기 가족에 적합한 민간 보험 리스트를 스스로 찾아 리스크를 일부 감수하고 투자하는 적극적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다(ibid., 100). 저축은 게으른 것이 되었고, (전문가를 끼고) 수익률에 기반해 자기 투자경향에 맞는 상품을 찾아 투자하는 펀드형 투자방식 역시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했다. 예컨대 좋은 리스크와 나쁜 리스크가 존재하며, 투자자는 리스크의 질적 감별을 통해 후자에 대해서는 분산을, 전자에 대해서는 적극적 끌어안기를 시도했다(Baker 2007, 568).
정부가 공적 사회안전망 장치들을 축소할 때, 근거로 제시한 것은 보편적 의무보험 형태들이 수익보다는 손실을 낳는다는 것이었다(ibd.). 정부의 적극적 지출은 경제부양의 동기가 되기보다는 경제의 정체 요인이 된다고 간주되었다. 이러한 시장지향성은 90년대 말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정신이 되었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른바 ‘CEO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반대로, 2008년의 먹거리 안전 이슈는 1997년 이후 시민사회를 지배한 기업가형 마인드에 조종을 울렸다. 두 가지의 시대정신들이 상충하며 촛불의 열기를 폭발시켰다. 첫째,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위험을 막아주는 국민국가의 적극적 책임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헌법 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촛불시위에서 터져나오며 촛불의 시대정신을 지배했다. 정부는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주권자인 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부여받는 주체다. 주권이 보편적 시민권이듯, 안전은 다시 한번 보편적 시민권의 원리로 소환됐다.
둘째, 개별 시민들이 자신에게 좋은 리스크를 감별해야 하듯, 대한민국의 CEO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이로운 외교와 그 리스크가 무엇인지를 감별해야 했다. 촛불집회 초기에 시민사회의 반발에 대응하며 정부가 과학적 설명과 더불어 제시한 입장은 크게 두 가지였다(장덕진 2008, 128). 하나는 시장지향성이 담긴 설명으로, 광우병 발병률의 낮은 가능성에 비해 한미 FTA 체결의 시장 진작 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는 설명이다. 광우병은 위험하지만, 시장진작 효과를 감안해 끌어안을 수 있는 리스크로 간주됐다. 다른 하나는 외교적 관점으로, 양국 외교관계 유지를 위해 재협상은 불가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광우병 발병의 ‘가능성’이 정말 낮은지, 낮은 가능성조차도 한국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지, 나아가 그것이 외교 리스크와 교환가능한 것인지 자체가 합의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안전의 보편적 권리 요구와 리스크 감수의 이 두 시대정신은 2008년의 촛불과 함께 격렬히 충돌했다.
요컨대, 당대의 정권을 낳은 시대정신이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전 지구적으로 2000년대를 경유하며 리스크 끌어안기의 원리가 한계점에 봉착했다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좋은 리스크를 끌어안기 위해서는 나쁜 리스크에 대한 계측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2000년대로 들어서며 테러리즘 및 금융위기의 문제가 터져 나오며 위험이 계측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제기됐다(Beck 2006, 337; Baker 2002). 미국에서는 9.11 테러가 분기점이 되었다. 테러가 계측될 수 없다면, 그것은 어떻게 통제될 수 있을까? 수많은 논란을 안고 출입국관리의 반인권적 집행이 이루어졌고, 이라크에 대한 (리스크) ‘예방 전쟁’이 시도되었다(Beck 2006, 337).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노동의 불안정과 맞물리며 난민과 이주노동의 이슈를 전 지구적으로 부상시켰다. 역시 난민의 노동력은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는 방어적 감각들이 유럽을 중심으로 시민사회를 휘감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 리스크 끌어안기의 시대감각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그 한계점을 드러냈다. 관리가 불가능한 위험은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감각을 바꾸게 마련이다. 징후로만 나타나던 그 변화의 감각들이 6년 후 세월호 참사를 만나며 대폭발한다.
(... 논문 전문은 본문 상단에 PDF 파일로 첨부)
고태경
‘조국 정국’으로 다시금 세대 논쟁이 불붙었다. 정유라와 최순실을 몰아냈던 입시 불공정 이슈는 조국 이슈와 만나며 전방위적인 진영논리와 세대논쟁을 촉발시켰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오늘날 대학생들의 정의론에는 보편성이 없는가. 시위를 하는 이들은 왜 최상위 엘리트인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인가. 2016년 정유라의 입시비리를 파헤친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진행됐다. 3년이 지난 오늘날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 역시 촛불을 들며 마스크를 착용한다. 역시 이들의 마스크 착용에도 의문이 붙었다. 이들의 마스크 착용과 시위의 비(非)보편성 간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마스크 시위의 존재론이라 불릴 만한 것이 존재한다. 유시민은 대학생들의 시위를 비판하며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진실을 말해야 하고 비판하면 불이익이 우려될 때 마스크를 쓰고 시위했다. ... [탄압이 없는] 지금 같은 상황에 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집회하는지 모르겠다.” 유시민이 대학에 있던 80년대에는 많은 이들이 조직활동을 위해 필명(가명)을 사용했다. 박노해는 이름에 ‘노동해방’이라는 함의를 담았고, 이진경은 사후적 의미부여를 통해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라는 함의를 얻게 된다.
이정로, 김영민, 황제우 등 수많은 필명들이 출판과 조직활동을 위해 동원되었다. ‘필명’은 공적 반향을 수반한다. 70년대의 김지하(어둠 속의 민주주의)로부터 80년대 박노해(노동해방), 이진경(경제학) 등의 필명에는 시대적 소명에 대한 자기확신이 표현되어 있었다. 자신의 이름과 시대의 사상을 일치시키겠다는 사고는 공론장이 곧 자신의 것이라는 강력한 자신감을 포함한다. 그러나 익명은 그렇지 않다. 익명은 사적인가 공적인가. 80년대는 청년 엘리트들을 공론장의 주인공으로 탄생시킨 시대였다.
공적 영역과 안전
반대로 오늘날 20대들은 완전히 다른 상황에 맞닥뜨렸다. 20대들을 에워싼 것은 2010년대 들어 부상하며 사회 전반을 휩쓴 ‘안전’의 이슈였다. 특히 여성들이 이 문제에 강렬히 반응했다.
80년대에 안전 문제는 대체로 죽음과 산업재해 등을 통해 노동계급의 ‘비참’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다(‘기계에 잘린 손가락’). 성별적으로는 남성의 얼굴을 했고, 시인 박노해가 그 인물형을 대표했다. 반면, 2010년대의 안전 문제는 공적 영역 그 자체에 대한 총체적 불신과 연결되며 나타났다.
먼저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세월호의 마지막 안내방송은 공적 기구의 무책임을 폭로했고,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낳았다. 생명 문제로서의 안전 이슈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만나며 혐오주의의 문제로 외연을 크게 확장한다. 여성들에 대한 불법촬영물, 온라인의 외모품평과 평판문화는 공과 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안전 이슈를 전방위적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공과 사의 경계 해체, 공적 기구에 대한 불신을 총체적으로 요약한 표현이 최근 회자되는 ‘안전공간’이라는 담론이다.
이 표현이 처음 이슈화된 것은 21세기 미국의 대학가였다. 애초에 이 담론의 취지는 성차별과 인종차별로부터 대학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표현은 2010년대 중반을 즈음하며 좀더 복잡한 물음들을 동반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안전은 무엇이고,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졌을 때, 나의 모든 행동은 평판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대체 안전이란 무엇인가. 연대와 규범이라는 공적 가치가 무너진 세계는 나의 언어를 보편화해 줄 시대의 공통 기반이 몰락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안전과 평등, 인권과 소통이 표현될 새로운 방법이 요구되었다.
2016년 정유라의 입시비리를 폭로한 이화여대생들의 대학본부 점거투쟁이 동일한 물음을 한국사회에 던졌다. 이 투쟁의 몇 가지 극단적 특징들을 복기해 보자. 먼저 이들은 자신의 투쟁이 대학 바깥 세력에 의해 전유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이들은 학생증 검사로 내부자를 확인했고, 사회운동조직에 속한 이를 찾아 시위에서 배제했으며, 시위가 끝난 후에는 투쟁의 기록들을 폐기했다. 이 모든 것들은 대학 밖 세계에 대한 거대한 불신과 연결되며 나타났다.
(2016년 이화여대 대학본부 점거 투쟁)
이들의 극단적 폐쇄성, 연대에 대한 거부는 미래라이프 대학과 관련한 학벌주의적 태도와 연결되며 시민사회 단체와 지식인들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은 내부적으로 놀랄 만한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발굴해 냈다. ‘달팽이 민주주의’라고 불린 이들의 숙의 민주주의 시도는, 모든 어휘 및 직책의 위계를 없앴고, 구성원의 합의와 존중 문화를 길고도 정교한 토론 속에서 발전시켜 가게 된다. 이 투쟁은 비타협적 형태를 취하면서 입시비리를 폭로하고 학내 민주주의를 변화시켰다.
대의에 저항하는 세계
대외적으로는 극단적 폐쇄성이 반(反)-보편성의 마인드를 드러낸 반면, 대내적으로는 유래 없는 숙의 민주주의의 평등성이 출현했다. 이들은 학교의 검열과 온라인의 ‘조리돌림’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했고, 위계나 파벌적 관계를 피하기 위해 소속단위를 밝히지 않은 채 익명의 관계를 유지했다.
비슷한 경험은 지난해 혜화역에서 진행된 불법촬영물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 시위에서 큰 이슈가 된 것은 시위 참여자의 기준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한다는 것이었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범주가 갖는 성소수자 배제의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역시 동일한 패턴의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들의 시위에는 왜 보편성이 없을까. 이들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정상 모델을 통해 ‘또 다른 차별’을 향유하는 것은 아닐까. 이들 역시 별칭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수평화했고, 비타협적 투쟁으로 온라인 성차별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들이 공유한 동일한 시대정신이 존재한다. 공적 영역에 ‘나’의 자리는 없다는 것, 따라서 타 세력에 의해 대의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80년대의 공론장은 독재정권이라는 국가의 통치 성격에도 불구하고 20대 청년 엘리트들에게는 사실 무한히 열린 공간이었다. 이전 세대는 문맹률이 높았고, 지적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 80년대의 서막을 연 ‘오월 광주’는 국가의 억압성에도 불구하고 체제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는 시대분기의 사건이었다. 세대적으로 86세대 엘리트들은 이전 세대와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단절할 수 있었고, 지식의 장을 본인 주도하에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익명이 아닌 필명의 시대를 살 수 있었던 이유다.
반대로, 오늘날의 공론장은 억압적이지 않은 국가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좁고 위태로워 보인다. 아무도 억압하지 않지만, 서로가 관음하고 조롱할 수 있는 시대, 온라인을 통해 모두가 글을 쓸 수 있지만 누구도 글의 힘을 신뢰하지 않는 시대가 펼쳐졌다.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은 이 시대를 특징짓는 감각이다. 우리는 다시 그 감각으로부터 ‘안전’의 포괄적인 개념을 발견한다. 이런 질문을 해보자. 오늘날 이 사회에서 누가 안전의 권리를 향유하고 있는가. 혹은 누가 안전을 물음에 부치고 있는가. 시위의 반-보편주의와 ‘달팽이 민주주의’의 비타협성은 한국사회가 이해하지 못한 20대 정의론의 복잡성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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