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인>에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기사 링크). 핵심만 정리하면, 현재까지 방역의 성공은 권위주의, 감시국가 등의 결과가 아니라 수평적-민주적 공동체 의식의 결과라는 것이죠. 세부 설문 문항들은 이 기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출처는 해당 <시사인> 기사)
한국의 방역을 동아시아 감시국가의 모델로 파악하는 글들은 구체적인 분석을 결여한 경우가 많고, 현재까지는 현실 부합성도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방역 실패국으로 꼽히는 브라질, 미국, 영국 등의 거의 유일한 공통점은 프라이버시 중시 여부가 아니라 정부 수장의 정치적 성향입니다(우파 포퓰리스트). 재난 상황과 직면하길 회피하거나(브라질과 영국), 재난의 책임을 가상의 적에게 돌리는 게 특징입니다(미국).
개인정보 문제 역시 정보를 공적으로 활용하되, 착취하지 못하도록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정보 활용에 대한 시민적 감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방역 후 개인정보가 제대로 폐기되는지, 개인동선 공개 시 개인을 특정하거나 혐오를 조장하지 않는 수준에서 정보 공유가 되는지, 그렇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지 등을 구상하는 로드맵이 필요한 것이죠. 개인정보 활용 자체를 감시국가의 등장으로 읽는 것은 너무나 일차원적이고, 현실을 읽는 데에도 무능력한 관점이라 판단합니다. 간혹 자유를 방치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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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을 의학적 노력의 결과를 넘어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커뮤니케이션 결과라는 점으로 시야를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시사인의 여론조사는 이러한 시각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하죠. 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보게 하는 사례가 독일과 일본의 사례입니다.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독일의 확진자 수는 일본의 거의 10배가 되는데, 왜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은 급상승하는가, 일본의 확진자 수는 적은 편인데 왜 아베는 방역 대처의 미숙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는가. 초기 방역의 위기를 축소/은폐했던 아베와는 달리, 메르켈은 펜데믹 상황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밝히고(메르켈의 코로나19 브리핑은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메르켈의 가파른 지지율 상승은 이 시민 호응의 효능감이 반영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방역의 한 축을 담당한 것이 신뢰의 문제임을 알게 해줍니다.
정부와 시민사회 간 소통이라는 화두는 한국에서 가장 잘 나타났습니다. 시사인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정부에 대한 신뢰도, 국민들 전체에 대한 개별 시민들의 신뢰도 상승이 이런 것이겠고요. 총선의 역대급 투표율도 이를 반영합니다. 며칠 전 공유한 제 칼럼 역시 방역을 정치적 소통의 문제로 보며 접근한 것으로 시사인의 조사 결과와 맞물리며 읽으면 더 좋습니다.
[시민정치시평] <코로나 19와 더불어 어떤 민주주의 소통 모델이 오는가>(링크)
p.s.) 끝으로 아래 그래프들은 토마스 페핀스키라는 정치경제학자가 만든 것입니다(링크). 둘 다 사회민주주의 지수라는 것을 활용해 각 국가마다 사회민주주의 지수와 인구당 확진자 간의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보기 위해 만든 것인데요. 왼쪽 그래프를 보면 아무 상관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는 페핀스키의 칼럼)
페핀스키는 상관관계를 만들기 위해 오른쪽 그래프에서 한국과 일본을 억압적 발전국가 모델로 간주하고 제외합니다. 하지만 그래프상으로 사민주의 지수의 중간대 국가들에서는 어떤 변별성도 없습니다. 사민주의 지수가 가장 높은 스웨덴도 그래프의 위치와 달리 방역 성공의 사례로 볼 수도 없습니다. 눈앞에 일어나는 변화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제국 내 지식인의 시선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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